
조회수 0
·2026.08.11
서기 1500년 8월 20일 「연산군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으름(木通實)을 승정원에 내리면서 이르기를,
"승지들은 이것을 함께 맛보고 이것으로써 농담의 시(戲詩)를 지어 바치라." 하였다.
조선의 열번째 왕이자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으름나무 열매를 신하들에게 하사한 뒤 희시(戲詩)를 지어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희시(戲詩)란 농담조의 시를 말합니다. 이 때는 조선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史禍, 1498년)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시기였습니다. 무오사화 이후 강력해진 왕권을 바탕으로 사냥과 사치를 즐기고 포악했던 연산군이 신하들에게 시를 지어 바치라고 했으니 으름 열매를 받고도 신하들이 시를 제대로 지었을 지 의문입니다. 기록에는 이후 어떤 시를 지었는지 남겨진 게 없습니다만 조선의 왕들 중에서 자작시를 가장 많이 지었던 이가 연산군이었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으름은 한약재명으로는 목통실(木通實)이라고 하며 으름덩굴 줄기가 약재로 사용됩니다. 바로 목통(木通)이라는 한약입니다. 목통은 조선시대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 지리지」를 보면 으름덩굴(木通)과 으름이 여러 군데 인용되어 있습니다.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으름을 채취하여 약재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번 글은 으름덩굴과 열매인 으름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원과 효능
으름덩굴과 식물인 으름덩굴(Akebia quinata Decaisne)의 줄기인 목통(木通)은 우리 나라 중부 이남의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습한 곳에서 자라며 일본과 중국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으름의 학명 중 속명 Akebia는 으름의 일본 이름을 인용한 것입니다. 지방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유름’ 또는 ‘졸갱이줄’, ‘목통어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으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과육을 먹으면 씨앗이 씹히면서 차가운 느낌이 전해져 얼음 같은 느낌이 난다고 해서 '으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으름을 먹어본 분들이라면 이해가 가리라 생각됩니다. 봄에 꽃이 피며 9월경에 열매를 맺기에 지금이 열매를 따기에 좋은 시기입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으름 열매를 한번쯤은 맛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의보감』에서는 목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였습니다.
성질이 평(平)하고,(약간 차다고도 한다) 맛은 맵고 달며 독이 없다. 오림(五淋)을 치료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관격을 풀어준다. 수종을 치료하고 번열을 없애며, 구규(九竅)를 잘 통하게 하고 목소리를 나오게 한다. 비달(脾疸)로 늘 자려고만 하는 것을 치료하고, 낙태시키며, 삼충(三蟲)을 없앤다.
줄기 내부는 가느다란 구멍이 관통하고 있다. 한쪽 구멍에 입을 대고 불면 반대편 구멍으로 공기가 관통해 나오는 것이 좋은 것이다.
목통은 덩굴성 식물의 줄기입니다. 덩굴성 식물이란 줄기가 땅을 기어가거나 다른 물체에 붙어서 자라는 식물을 말합니다. 담쟁이, 등나무, 넓은 잎갈퀴, 마, 칡 등이 있는데 이런 식물의 공통점은 인체에서 작용할 때 모두 수분을 잘 배출하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공통적으로 이뇨 작용이 있습니다. 소변이 시원하지 않거나 방광염이 있을 때에 필수적으로 사용됩니다. 수분 배출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부종이 있을 때도 이런 식물들이 이용됩니다. 또, 여성들이 출산 후에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돼지족발과 함께 목통을 넣어서 끓여 먹으면 젖이 잘 나오게 됩니다. 『동의보감』의 설명처럼 구규(九竅)를 잘 통하게 합니다. 구규란 인체에 있는 9개의 구멍을 말합니다.
목통은 현대에 와서 다양한 약리작용이 증명되었습니다. 항염증, 진통, 항종양, 항박테리아 활성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맛있는 열매와 더불어 줄기는 약재로서 다양한 효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열매인 으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연복자(燕覆子)라고 한다. 으름덩굴의 열매다. 줄기는 목통이라고도 하고 통초라고도 한다. 7~8월에 딴다. 성질은 차고 맛은 달다. 위열과 반위에 주로 쓴다. 삼초에 침입한 열을 없애 대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마음을 느긋하게 하며, 갈증을 없앤다.
으름은 성질이 차고 맛이 달기에 갈증을 없애주고 대소변을 잘 나오게 합니다. 으름이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는 것은 스트레스로 기운이 뭉친 것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어 결과적으로 마음을 느긋하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매로만 알았던 으름에 이런 효능이 있다니 고마운 열매입니다. 앞으로는 으름을 먹게 되면 이런 효능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숲 속의 부인, 으름
제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아버지를 따라 울산에 있는 무룡산에 벌초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고조부와 증조부 묘소가 함께 있던 곳이었는데 늦더위가 한창인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잠깐 숲으로 들어가시더니 처음 보는 열매를 몇 개 가져오셔서 맛을 보라고 하십니다. 작은 바나나 크기의 열매인데 속은 희고 까만 씨가 많았습니다. 달기는 한데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열매가 바로 어름이었습니다.
어름은 처음 열렸을 때는 녹색이지만 초가을에 접어들면서 점점 갈색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익으면 세로로 활짝 갈라집니다. 모양이 조금 특이하다 생각했었는데 옛 사람들은 으름의 이런 모습을 보고 성적인 상상을 한 모양입니다. 으름을 ‘임하부인(林下婦人)’이라고도 합니다. ‘숲 아래의 부인’, 혹은 ‘숲 속의 부인’이라 해석할 수 있는데 으름 열매를 이렇게 부른 데에는 으름 열매가 익어서 벌어졌을 때 그 모양이 여성의 성기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처음에서 연산군이 신하들에게 농담조의 시를 쓰라고 한 것은 아마도 으름의 모양과 연관이 있지 않나 추측해봅니다. 으름덩굴의 어린 잎은 나물로 해 먹기도 합니다. 또, 말려서 차로 끓여먹어도 좋습니다. 줄기는 약재로도 쓰지만 예전에는 바구니를 짜기도 했다고 합니다. 줄기를 삶은 물로 노란색의 염료로도 썼다고 하니 으름덩굴의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 주의
목통과 이름이 유사한 관목통이라는 약재가 있는데 이것은 목통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독성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식물입니다. 절대 먹어서는 안됩니다.
경희토정한의원 원장 한봉재

본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제와 무단복제를 엄금합니다.
본 사이트의 한약은 한의사의 진단에 따라 처방되는 의약품입니다.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경우, 복약을 멈추고 한의사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 피부: 발진, 두드러기 등
- 소화기계: 식욕부진, 위부불쾌감, 구역, 구토, 설사 등